AI는 조언자일까 결정자일까
2026-09-28
판단을 AI에게 넘길 때 사람에게 남는 것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2025년 세쿼이아캐피털의 AI 행사에서 젊은 사용자들이 ChatGPT를 어떻게 쓰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들이 ChatGPT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묻지 않고는 인생의 결정을 거의 내리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아주 거칠게 나누면 나이 든 사람은 검색 대신 쓰고, 20~30대는 인생 조언자처럼 쓰며, 대학생들은 운영체제처럼 쓴다고 정리했습니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는 한 문장
우리는 오랫동안 중요한 결정을 경험과 직감,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과의 대화로 내려 왔습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판단력이 자랐습니다. 지금은 그 과정을 한 문장이 대신합니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편리합니다. 문제는 깊은 고민 없이 결론을 얻는 방식이 익숙해진다는 데 있습니다. 생각하는 시간이 줄고, "AI가 그렇게 말해서"라는 이유로 결정의 책임까지 흐려집니다.
AI를 믿을수록 덜 따져 봅니다
이것은 젊은 세대만의 일이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연구진은 업무에 생성형 AI를 쓰는 지식근로자 319명을 조사하고, 이들이 적어 낸 실제 사례 936건을 분석했습니다(Lee et al., CHI 2025). AI를 믿는 정도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를 덜 했고, 그 일에 자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따져 보았습니다. 비판적 사고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답을 직접 만드는 일에서 AI의 답을 확인하고, 내 일에 맞게 합치고, 결과를 끝까지 챙기는 일로 옮겨 갔습니다. AI를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역량이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다.
먼저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
AI의 답을 먼저 보면 판단이 그 답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하버드대의 부친차(Buçinca)와 가요스(Gajos) 연구진은 AI의 판단에 설명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이 경향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 수도 있다는 앞선 연구들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람은 추천 하나하나를 따져 보기보다 언제 AI를 따를지 대강의 요령을 만들어 버린다고 보았습니다. 연구진은 199명에게 음식 사진을 보여 주고 탄수화물이 많은 재료를 바꾸게 하면서, 세 가지 장치를 시험했습니다(Buçinca et al., 2021). 먼저 스스로 결정한 뒤에 AI의 추천을 보게 하거나, 버튼을 눌러야 추천이 보이게 하거나, 추천을 30초 늦게 보여 주는 방식입니다. 연구진은 이것을 인지 강제 장치(cognitive forcing functions)라고 불렀습니다. 이 장치들은 AI의 판단에 설명만 덧붙이는 방식보다, AI가 틀렸을 때 그대로 따르는 일을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줄였습니다.
그래서 AI의 답은 생각의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AI의 답을 받은 뒤에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가끔 스스로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AI를 잘 활용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중요한 결정을 AI에게 넘기고 있는 건 아닐까?
질문을 설계하는 자리
저도 요즘 업무 자동화 흐름을 설계하고 AI와 함께 코드를 짜면서 같은 질문을 합니다. AI가 판단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제 견해는 하나로 정리됩니다. 전문성이 희소하다는 것이 가치였던 시대가 저문다면, 우리는 AI를 설계하는 능력과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맥락 판단력으로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맥락 판단력이란 AI에게 무엇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요청할지를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AI는 입력된 것에 반응하지만, 사람은 입력되지 않은 것을 읽고 설계합니다.
법도 같은 자리에 선을 긋습니다. 2024년에 제정된 유럽연합 인공지능법 제14조는 고위험 AI를 감독하는 사람이 AI의 결과에 자동으로 기대는 경향, 곧 자동화 편향을 알고 있어야 하며, AI의 결과를 무시하거나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AI는 조언자의 자리에 두고, 결정은 사람이 내리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먼저 생각해도 남는 것
다만 먼저 생각하게 하는 장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과의존을 가장 많이 줄인 장치를 가장 덜 좋아했고,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일수록 효과를 더 크게 보았습니다.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덜 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식근로자 연구도 스스로 적어 낸 응답을 모은 것이라, 실제로 판단의 질이 떨어졌는지까지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유럽연합 인공지능법이 말하는 것도 고위험 AI이고, 우리가 매일 쓰는 대화형 AI에 그대로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AI를 조언자로 둘지 결정자로 둘지는 도구가 정해 주지 않습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사람에게 남습니다.
참고한 연구
- Sequoia Capital, Sam Altman on Building the 'Core AI Subscription' (AI Ascent 2025 녹취) https://sequoiacap.com/podcast/sam-altman-training-data
- Lee et al., The Impact of Generative AI on Critical Thinking: Self-Reported Reductions in Cognitive Effort and Confidence Effects From a Survey of Knowledge Workers (CHI 2025) https://doi.org/10.1145/3706598.3713778
- Buçinca, Malaya, Gajos, To Trust or to Think: Cognitive Forcing Functions Can Reduce Overreliance on AI in AI-assisted Decision-making (arXiv:2102.09692, 2021) https://arxiv.org/abs/2102.09692
- 유럽연합, Regulation (EU) 2024/1689 (Artificial Intelligence Act), 제14조 인간의 감독 (2024) https://eur-lex.europa.eu/eli/reg/2024/1689/oj/eng